[컬럼] 조용준의 아주경세(亞洲經世) 2 - 11월 한일정상회담 거부한 아베 총리의 속내
[컬럼] 조용준의 아주경세(亞洲經世) 2 - 11월 한일정상회담 거부한 아베 총리의 속내
  • 반병희기자
  • 승인 2019.10.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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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아주경세(亞洲經世) 2 - 11월 한일정상회담 거부한 아베 총리의 속내

 

 

 

이낙연 총리가 새 일본 왕의 즉위식 참석차 일본에 갈 때 양국 현안에 대한 아베 총리와의 면담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이므로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라고 지난번 칼럼(10월 10일)에서 일찌감치 전망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총리를 만난 아베는 문대통령의 친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대뜸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깬 것"이라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며 한국을 비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20분간의 회담에서 징용판결의 국제법 위반을 두 차례나 주장했다고 전했다. 회담에 배석한 오카다 나오키 관방부 부장관도 기자 브리핑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은) 한일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무너뜨린다. 한국은 국제조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있다”고 했다는 아베 총리의 회담 중 발언을 소개했다.
아베가 11월에 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한일 정상은 11월에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한중일 정상회의와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두 차례나 같은 국제회의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아베가 이 회의에서의 어떤 회담도 하길 거부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똥 싼 놈이 성질내는 꼴이다.
아베는 한일 경색국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떠들어댄다. 아베는 왜 이 주장을 매번 강조하는 것일까.   
강제징용 배상을 하게 되면 한국을 강제 지배한 자신들의 과오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이를 하기 싫어하는 반발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배상이 실질적으로 집행되면 이와 유사한 사안에 대한 소송 및 판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사실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보다도, 아베에게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아베가 강제징용 배상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바로 외할아버지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두 명이나 총리를 지냈다. 바로 키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와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1901-1975)다. 키시는 56·57대, 사토는 61· 62·63대 총리를 지냈다. 
키시와 사토는 형제다. 키시가 사토의 둘째 형이다. 키시는 원래 이름이 사토 노부사케인데,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원래 집안이었던 키시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양자로 들어갔다. 
키시는 관료가 된 후 일본 괴뢰국인 만주국(満州国) 국무원(国務院) 실업부총무사장(実業部総務司長)에 취임해 만주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1937년 산업부 차장, 1939년 총무청 차장이 되면서 ‘만주 경영’에 매우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키시는 당시 관동군 참모장으로 나중에 일본을 태평양전쟁으로 몰아넣은 전쟁광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도조 히데키는  원활한 전쟁 지도를 위해 관례를 깨고 총리이자 육군대신, 참모총장을 모두 겸임하며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장본인이다.
도조 히데키의 지원으로 만주에서 일본 본국으로 복귀한 키시는 상공대신이 되었고, 전쟁 중에는 군수물자를 총괄하는 군수담당 차관(장관은 도조 히데키)으로 활약했다. 
일본 패전 이후 키시 역시 A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도쿄 스가모(巣鴨)구치소에 구금되었다. 자살하는 정치인이나 군인이 속출하는 가운데 당시 키시는 “우리는 전쟁에 진 것에 대해 일본 국민과 천황 폐하에게 책임은 있어도, 미국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침략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막다른 골목에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생각을 후세에 확실히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적반하장의 입장을 보였다.
또 키시는 “이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바꿔 말하면 이 전쟁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존전쟁(生存の戦)이지 일부 사람이 자의로 해석하는 것처럼 침략을 목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일본으로서는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 개전(開戰) 초 각료로서의 책임이다.”“종전 후 각 방면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끝까지 성전(聖戦)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미국에 먼저 전쟁을 도발한 일본이 미국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것이나, 침략 당사자인 그들의 생존전쟁이자 성전이었다는 그의 자가당착적인 인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다로 말해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의 이런 정신상태가 손자인 아베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역시 그의 할아버지처럼 조선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이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강제징용자들은 돈을 받고‘성전(聖戦)’에 동원된 노동자일 따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야만 할아버지 생각을 훼손하지 않고 계속 받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배상은 아베에게는 할아버지를 욕되게 만드는 사실인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퇴행적 역사인식의 아베에게서는 한일 양국의 상식적인 관계 복원과 관련해 어떠한 건설적인 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씩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한 것이 지난해 10월 30일이었다. 딱 1년 전이다. 이어 한 달 후인 11월 29일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 6명과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및 유족 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상고심에서도 피고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GSOMIA·지소미아)’종료 시점도 오는 11월 23일로 다가오면서 지난번 칼럼에서 강조한대로 미국의 압력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브래드 셔먼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은 28일 성명을 내고 “한미일 동맹은 동북아 안보의 기반”이라며 “우리가 직면한 공동의 안보 과제 해결을 위한 협력을 역사가 가로막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셔먼 위원장을 포함해 민주당 소속 캘리포니아 지역구 하원의원 14명은 공동 서명의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보내 한일 갈등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11월 16~19일 방콕에서는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ADMM-plus)가 있고, 한미일 국방장관 3자회담도 열릴 예정이다. 아무래도 아베는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미국이 자신이 할 일을 대신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일정상회담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에게 상당한 ‘경제적 조공’을 받치기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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