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자 박사의 북한 이야기] - 파워엘리트 양성소 만경대혁명학원(2) - 만경대혁명학원에는 누가 입학했나
[김옥자 박사의 북한 이야기] - 파워엘리트 양성소 만경대혁명학원(2) - 만경대혁명학원에는 누가 입학했나
  • 김옥자 북한학박사
  • 승인 2020.11.1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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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혁명학원은 개교 초기에는 주로 항일빨치산 활동가들의 아이들 중 고아가 되었거나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로 꾸려졌다. 북한은 해방 후 김일성과 함께 귀국한 몇몇의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고 돌보면서 중국의 동북지역 국경지대에 림춘추를 비롯한 박영순 김좌혁 등의 관료들을 파견하여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가능한 유자녀들을 찾아오도록 했다. 그 당시의 「길림일보」, 「연변일보」, 「녕안일보」에는 ‘유자녀 찾기’ 광고문과 모집한 아이들을 평양으로 보낸다는 기사가 종종 게재됐다. 연변일보에는 중화민국 37년(1948년) 6월 15일 1면에 “재연변 조선인민혁명자유가족에 비치는 광명: 66명의 혁명렬사자가족자녀 선발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으로: 많은 사람들의 환송리에 6월 14일 아침 연길을 출발”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들이 중국지역에서 처음으로 모집해 평양으로 귀국시킨 유자녀들이다. 한편 북한내에서도 만경대혁명학원 입학대상자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노동신문에 게재했다. 그 당시 행정체계나 교통통신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않은 북한 실정에 그나마 효율적인 방안으로 ‘혁명자유가족학원 신입생 모집요항’을 로동신문에 냈던 것이다. 그러나 ‘항일투쟁유자녀’의 성장으로 더 이상 조건을 갖춘 입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다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많은 수의 전쟁고아 및 유자녀(‘애국렬사자유자녀’)들과 사회주의국가 건설에 기여하다가 희생한 사람들의 자녀(‘혁명가유자녀’)들이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했다. 한국전쟁 이후 만경대혁명학원 입학대상자는 주로 한국전쟁 중 전사하거나 심한부상을 입은 인민군의 아이들이거나 민간 피살자의 아이들 중 당의 심사에 통과한 경우이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 최룡해는 한국전쟁 중 사망한 최현의 아들이고, 얼마전 김정은에 의해 처형된 장성택과 그의 형 장성우의 부모는 전쟁 중 민간인 피살자에 해당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더 전쟁 고아나 유자녀가 생기지 않게 되자, 만경대혁명학원에는 인민군 활동 중 사망, 또는 심한 부상을 당했거나, 남파된 공작원들의 아이들이 입학했다. 1993년 강릉해안에 잠수함을 타고 남파됐다가 사망한 남파조직원의 아들의 경우는 만경대혁명학원에 재학 중 홍콩 위성tv 「조선기행 2010」의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북한의 핵심엘리트 중 만경대혁명학원 출신들로는 연형묵, 최태복, 최영림, 김국태, 계응태, 전병호, 최룡해 등이며 이들 외에도 수 많은 졸업생들이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분야의 핵심간부로 활동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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